2012. 7. 3.

지리공부의 당위성 [펌]

사람들에게 지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대뜸 나오는 말이 풍수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젠가 외부 강의가 끝나고 나서 어떤 수강생 중의 한 분이 부친의 묘자리를 보아 달라고 하여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아마도 풍수지리에서 지리라는 말이 들어가는 덕에 지리하면 풍수지리가 떠오르는 지도 모르겠다. 지리학과에 오고자 하는 학생이 겪는 공통의 어려움이 부모님에게 지리학과로 가겠다고 하면, 그까짓 풍수지리 공부하려고 지리학과에 가느냐고 말린다고 하니, 아마도 지리학자들에게는 후진 양성에도 문제가 있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분명히 오늘날의 지리학은 풍수지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간과학(Spatial Science)이라는 학문의 범주에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공간과학으로서의 지리학은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개념임이 분명하다. 공간과학으로서의 지리학을 설명하려면, 공간이 무엇인지, 또한 과학이 무엇 인가로부터 개념정의가 이루어져야 비로서 제대로 된 설명이니 아마도 설명에 앞서 한숨부터 나올지 모르겠다. 

먼저, 지리학에 대하여 잘못 알려져 있는 사회적 통념부터 자세히 살펴보면 어떨까? 먼저, 지리학도(자) 하면 사람들은 흔히 지도를 떠올리게 된다. 지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야 지도에는 도사이겠다.” 하는 응답을 흔히 받게 된다. 물론 지도는 지리학자들의 필수품이며 지리학자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지리학의 전체가 아닌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엄연히 지도학이라는 학문분야가 존재하고, 구체인 지구를 2차원적인 지도로 투영하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도법이 지도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지도는 지리학의 연구방법 중에 시각화를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이것은 지리학자들이 지리적 현상간의 공간적 상호관련성을 규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한 방법으로, 이런 방법에는 최근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GIS (지리정보체계)나 계량분석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흔히 오해 받는 것이 지리학도(자)를 탐험가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지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어디가 보았어? 남극에도 갔겠네?,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곳에 갔겠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지리학은 지구 위의 새로운 지리적 사실을 발견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며, 그래서 야외답사와 야외 관찰은 필수적인 지리학의 방법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리학자들의 실험실은 바로 야외라는(Geographers’ laboratories are fields) 말을 하기도 하며, 미국에서 유명한 지리 잡지인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에서 미지의 지역에 대한 답사기나 탐험기를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만이 지리학이라고 할 수 없다. 지리학이 추구하는 새로운 발견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세계를 재발견하는 것도 의미한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말하면 지리학은 우리가 가진 지식의 지평선, 앎의 영역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데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오해로는 지리학도(지리학자)라고 하면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박물학자, 아니면 관광안내원 정도로 아는 것이다. 가끔 지인들과 야유회나, 놀이를 갔을 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는 한다. 무조건 ‘어이 여기 지리학자가 계시니 우리 길 잃어 버릴 염려가 없을 거야. 또는 여기에 뭐 맛있는 음식점 있어, 아니면 이곳에 유명한 것이 뭐야” 하는 등의 질문이 쏟아져 오는 것이다. 이 강의 길이가 얼마인가, 저기 산의 높이는 얼마인가? 라는 등의 질문도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리학자는 만물박사가 아니다. 이런 질문은 마치 경제학자에게 농수산물 시장의 야채 값을 물어보거나 건축학자를 붙잡고 아무 건물의 높이나 재료에 대해 물어보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이런 지식은 인터넷을 뒤지거나 백과사전을 들쳐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물론 지리학은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 사실들 속에서 발견되는 지리적 현상들의 공간적 관계와 법칙을 통해 더 좋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지리학의 목적이라는 것을 알면, 지리학자를 만물박사로 보지는 않을 게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일어나는 오해로, 앞부분에서도 언급한 지리학하면 풍수지리로 이해하는 생각을 들 수 있다. 풍수지리는 우리나라에서 고유로 발달시켜온 지리사상체계로, 우리 민족이 한반도 땅에 오천년이 넘도록 자리잡아 오면서 발전시킨 좋은 터 고르는 법이다. 이것은 그 철학적 기반을 음양오행사상에 두는 것으로, 동양사상체계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풍수지리보다는 풍수론 또는 풍수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고 가꾸어 온 우리 땅의 이치를 살펴보려면 그 뒤에 숨어 있는 풍수의 원리를 무시할 수 없다. 풍수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자연관이자, 환경관이기 때문에 풍수의 원리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나라의 도시 취락 가옥의 입지를 제대로 보고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풍수지리는 지리학이 추구하고 있는 지리적 현상의 해석법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풍수지리를 지리학으로 여기는 것은 큰 오해다. 가장 큰 오해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리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지리학은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한번 생각해 보자. 물론 이 대답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발전되어온 지리사상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 대답을 꺼내와야 된다. 자 여기에 다름 사람이 말한 훌륭한 답을 하나 제시해 보자. 

“ The power and beauty of geography allows us to to see, understand and appreciate the web of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place, and environment. ” 
해석해 보면, “지리학의 힘과 아름다움이란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장소와 환경간에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을 보고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는 것이다. 

지리학이 연구대상으로 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생활 공간이다. 지구위의 공간인 지표는 물론 인간의 생활공간이지만, 비행기가 다니는 대기권, 지하도시를 건설하는 땅 밑, 인간의 손길이 닿은 바다 밑도 인간의 생활공간이 되며, 지리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어우러진 지표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지리학은 지표아래의 지질만 연구하는 지질학과 대기만을 연구하는 기상학과 다른 차이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리학은 무엇을 연구하여야 하나? 그것은 바로 앞의 문장에서 언급한 복잡한 관계(web of relationship)이다. 그냥 관계도 아닌, 사람과 함께 사람의 생활이 어우러진 땅과 사람을 둘러싼 자연 환경, 인문 사회 환경간에 존재하는 관계가 바로 연구하여야 될 일이다.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지,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만드는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여 인간에게 이롭게 공간배열(spatial arrangement)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리(地理)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地利인 것이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푸른 공 모양 지구는 우리 인류의 고향이다. 인간이 고향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은 당연히 지리학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실재적 이유이다. 그러나 우주선 지구호에서의 인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러므로 지구의 자연 및 인문환경시스템과 이들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여 인류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제공해 주는 것이 지리학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 이유가 된다. 또한 학문적으로는 지리적 상상력의 확대를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도록 하는 것은 지리학의 성립에 대한 지적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실용적인 존재이유는 세계 인문 환경과 자연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지리적 지식을 제공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남미의 수리남과 베네수엘라 옆에 있는 나라가 Guyana 인지 Guinea 인지 물어보면 흔히 서아프리카에 있는 Guinea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편지를 부치라면 아프리카로 갈 편지가 남미로 가거나 반대의 경우가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아무리 세계화가 되었지만 다른 나라에 대한 기초적인 지리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경제 전쟁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화를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지리문맹을 면하게 해 주도록 애써야 하는 지리공부의 당위성이 되는 것이다. 

최재헌(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예전에 읽었던 글이지만, 좋은 글이어서 여기도 퍼와봤음..





댓글 1개:

  1. 지리학과 학생으로서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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