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3.

장소의 기억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01
1903년 명동성당.
출처 :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jamesmar&folder=27&list_id=12193019&page=1 


  서울 답사를 하게 되면,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일제에 의한 식민 경관 형성"이다. (...) 따라서 서울시청사 앞에서도, 신세계백화점 앞에서도, 한국은행 본점 앞에서도, 남산서쪽 기슭의 일본식 가옥들 속에서도 우리는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면서 그 경관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스무살 무렵 비 맞으며 한국은행 앞을 처벅거리며 걷던 추억을 떠올린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맞는 도시의 모습이 시골보다 더 먹먹한 아련함을 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 비내리는 도시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이 웅장하면서도 화려하고, 세월의 진중함까지 느껴지던 석조로 된 한국은행 건물이었다. 남산 기슭의 일본식 가옥을 보면, 1900~194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떠오르면서 창틀 하나하나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만 같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명동성당에서는 민주화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던 그곳을 선배 따라 처음 갔을 때의 감격과 감동이 떠오른다.(...) 명동성당의 건립 역사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명동성당은 원래 천주교 신자로 순교했던 김범우의 집터였다. 조선이 외세에 굴복하여 천주교의 포교를 인정하게 되자, 외국 선교사를 비롯한 천주교인들은 김범우의 집을 순교지로 정하고 그곳에 성당을 세울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곳은 주변보다 높은 언덕이었을 뿐만 아니라, 궁궐과 성곽을 빼고는 사람 하나 설 만한 높이의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던 서울 도성에 하늘로 치솟을 듯한 첨탑을 지붕으로 한 서양의 벽돌 건축물은 능히 궁궐을 내려다 보며 압도할 만했다. (...)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명동성당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왕실기념관이 생긴다면 반대할 것 같다. 명동성당이 건립된 배경에 대해서는 기분 나쁘면서도 지금의 명동성당은 정겹다. 나의 이 모순된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서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 심승희 저, 2004, p.40~43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kor/ut/smart/smart_list.jsp?cid=129186&keyword=&cat1=A&cat2=&cat3=&category=&listCount=30&areaCode=&ListType=&out_service=

  대학로의 중심이라 할 마로니에 공원 한복판에는 서울대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전하기 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물이 있다. (...) 교문 바로 앞에 다리가 하나 보이고 그 아래로 청계천의 지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 다리 이름을 당시 서울대 학생들은 프랑스의 서정시인 아폴리네르의 시귀절을 따 '미라보 다리'라 이름 붙였고, 그 아래로 흐르는 대학천을 세느강이라고 불렀다.
  중고등학교 때 문인들의 추억담 속에서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정말 낭만적으로 느껴졌었다. 서울대학생은 지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문화적 취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머리가 굵어지면서 이 당시 이곳에 미라보 다리니 세느강이니 하는 이름을 붙였던 대학생들이 정말 유치하고 가볍게 느껴졌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중국의 시나 고문( 古文 )에 흔히 나오는 봉래산이나 두류산, 영랑호 같은 절경의 지명들, 상가에 간판 붙이듯 우리나라 산수에 아무렇게나 갖다붙이던 경박한 사대주의 모습이 근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부르기 시작하면서 굳어져 버린 이름을 가지고 그 정당성이나 타당성을 따지고 바로잡는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 이름이 이미 장소 경험자의 기억과 몸속에 각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덕수궁보다 경운궁이 맞는 이름이지만*, 덕수궁 돌담길에서 연인과의 소중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경운궁 돌담길'로의 명칭변경은 무자비한 폭력일 수 있다. 이성보다는 기억이라는 정서가 더 원초적이고 끈질긴 힘을 갖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대한제국의 멸망과 관련이 깊다.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로 양위하게 된 고종이 경운궁에 머물면서 덕수라는 궁호가 붙여지게 되었다. 본래 이 궁호는 조선 초 정종에게 양위하고 물러난 태조에게 올렸던 궁호로서, 물러난 왕에게 덕을 누리며 오래 사시라는 뜻을 지니지만, 고종의 양위가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덕수궁으로의 명칭 변경은 대한제국의 멸망을 반영한다.

앞의 책, p.90~94









그렇다. 장소의 기억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성보다는 기억이라는 정서가 더 원초적이고 끈질긴 힘을 갖는다.
장소애(topophilia)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고, 인간이 장소에 존재하면서 장소에 갖는 원초적 감정이다.

인간주의 지리학의 관점은 인간과 장소, 공간, 환경 등과의 관계맺음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것을 이해하는 틀이 되어줄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