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12.

이드리시 세계지도-근대를 선취한 중세 세계도

중세 아랍 지리학의 거장인 이드리시가 제작한 세계지도(1154년)
출처 : http://www.junpasa.com/_yunil/kkansu/27.htm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중세에 이슬람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이다. 이 지도는 동시대의 다른 문화권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보다 더욱 넓은 범위를 표현하였고, 지도학적으로도 뛰어난 지도이다. 이 지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아래 내용은 <세계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저, 송태욱 역, 2010, p.185~209 에서 발췌하고 정리하였다.


1. 자유로운 구도; 방위의 이중구조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중심으로 지구를 원형으로 표현한다. 이것도 헤리퍼드 세계지도가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계를 표현한 것과 유사하다. 명확한 중심을 갖는 원에 가장 성스러운 것, 또는 가장 상징적인 것을 배치하는 것은 시대나 장소를 초월한 공통의 발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드리시 세계지도에는 메카라는 이름도 기호도 없다. 다만 메카와 메디나라는 성스러운 두 도시가 소재하는 지방의 명칭인 히자즈라는 지명만 보인다. 게다가 그 글자체나 크기도 다른 지명과 똑같아서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헤리퍼드 세계지도와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방위 설정이나 세계의 구도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남쪽을 위로 한다. (...) 이슬람에는 동서남북의 절대적인 방위 중에 특정한 방위를 가장 존중하거나 좋게 보는 인식이 없었다. 이것이 기독교 방위관과 다른 점이다. 기독교에서는 낙원 에덴동산의 방위, 즉 동쪽이 성스러운 방위고, 헤리퍼드 세계지도도 동쪽을 위로 하여 세계를 그렸다. 이에 반해 이슬람에서 성스러운 바위는 성지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하는 방향(키브라, 예배의 방향)이다. 이슬람의 모스크도 성지 메카를 향하는 방향, 즉 키브라에 따라 세워진다. 물론 키브라는 장소마다 변하는 상대적인 방위다.(...) 그러나 현시된 방위는 왜 남쪽을 위에 두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세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대는 지중해에서 이란고원에 이르는 동서 벨트에 있었다. 이드리시 세계지도를 비롯한 세계도도 이 중심 벨트에서 제작되었다. 문명의 중심지대에서 보면 성지 메카는 남쪽에 있다.(...)
원형을 중심에 종교적인 성지를 두고 세계를 구도하는 점에서는 이드리시 세계지도, 헤리퍼드 세계지도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구도의 원리는 전혀 달랐다. 헤리퍼드 세계지도의 구도는 티오 지도라는 고대 그리스 이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헤리퍼드 세계지도에서는 티오 지도를 현실에 근접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수정을 가하면서도 기존의 세계관을 계승하여 세계를 구도하려는 것이었다.(...)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이와는 전혀 다른 원리에 입각한다. 앞에서 말한 중세의 여러 세계도에서는 구도를 결정하는 것이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고정적인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난 세계도인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도 의미가 숨겨진 방위에 근거한 메카로 키브라가 수렴(구심)됨으로써 세계가 편성된다는 세계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구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작성된 세계도의 결과로서 표현되는것이다. 결코 그 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드리시 세계지도를 비롯한 중세 이슬람의 세계도는 구도의 틀을 어디서 찾았던 것일까? 그것을 제공해준 것은 헬레니즘 시대의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다.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는 세계도로서는 드물게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나 종교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난 세계도였다.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를 참조하면서 시칠리아 왕국에서 축적해 온 지리 정보에 따라 자유롭게 세계를 작도한 것이다.

파일:Claudius Ptolemy- The World.jpg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 전근대 지도로는 보기 드물게 자기중심적, 종교적 세계관이 드러나지 않는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Claudius_Ptolemy-_The_World.jpg


2. 외쿠메네의 구분과 배열; 기후대의 도시

이드리시 세계지도가 고대 그리스에서 계승한 것 중 하나는 지도 상반부에 그려진 동심원상의 붉은 선이다. 지도의 맨 위, 즉 가장 남쪽에 있는 곡선이 적도다. 적도를 포함하여 여덟 개의 곡선이 아래 쪽으로 그어져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크리마타'라고 불리고 아라비아어로는 '이크림'이라는 기후대를 나타내는 구분선이다. (...) 적도보다 위쪽의 남반구에는 구분선이 전혀 없으며, 혹서무인지대라 쓰여 있다. 이에 대응하는 것이 혹한무인지대다. 이는 거의 북위 63도에 해당하는 최하단 곡선보다 아래쪽에 있는 반도 모양의 돌출부에 기입되어 있다. 이 두 무인지대를 합친 면적은 거의 육지의 절반에 이른다. 나머지 절반이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지대, 즉 외쿠메네다. (...)
적도를 포함하여 기후대의 구분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드리시 세계지도가 세계를 원추도법으로 그렸다는 것을 말해 준다. (...) 또한 최하단의 혹한무인지대는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세계 외부에 존재하는 기후대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면 이드리시는 외쿠메네를 일곱 개의 기후대로 나눈 것이 된다.(...)기후대는 동서 방향의 긴 띠 모양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내부를 남북선, 즉 열 개의 경선으로 구분했다. 외쿠메네는 일곱 개의 기후대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는 70(7X10)구획으로 거주 세계를 나눈 것이다. (위의 지도에는 보이지 않음.) 그는 경선의 근거를 프톨레마이오스를 따라 아프리카 서안 앞바다의 카나리아 제도에 해당하는 행복 제도를 달리는 선에서 찾고 있다.(...)할둔도 일곱 개의 기후대별로 세계를 해설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온화하고 문명이 발달한 곳은 제4기후대로 그 양쪽의 제3기후대와 제5기후대가 그 뒤를 잇는다고 설명한다. 할둔은 이 세 기후대를 합쳐 중간지대라 부르고 "민족이나 주민이 흘러넘치는 대해처럼" 많고 "문명 생활에 필요한 형태, 즉 생계, 주거, 기술, 학문, 정치적 지도성, 왕권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고 기술했다. 특히 중앙의 제4기후대는 '룸인의 바다(지중해)'와 같은 동쪽 바닷가에서 중국까지 펼쳐진 일대에 해당하고, 그 안에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대가 포함된다. 이에 비해 남쪽의 제1기후대와 제2기후대는 혹서와 건조한 날씨 때문에 인구가 적고 피부도 검게 된다. 반대로 북쪽의 제6기후대와 제7기후대는 혹한 때문에 인구가 적고 피부도 하얗고 눈도 파랗게 된다고 설명한다.

3. 육지에 갇힌 인도양의 해방; 중국에서 제작한 동시대 세계도의 수용

프톨레마이오스 세게지도가 인도양을 대륙에 갇힌 내해로 그린 데 반해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태평양으로 열린 대양으로 그린 점이다.(...) 이슬람의 지리학은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가 인도양을 잘못 표현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드바드의 모험>으로도 잘 알려져 있듯이, 이슬람 세계는 8세기 중엽 아바스 왕조가 성립한 이래 활발하게 인도양 교역을 벌이며 인도양 일대에 대한 지리적 정보를 축적했는데, 이것이 이러한 인식의 바탕이 되었다.(...) 바다를 사이에 둔 인도, 그리고 중국과의 교류는 이드리시 세계지도가 인도양 남쪽을 새롭게 그려내는 데 도움을 준 정보원이었을 것이다.
(이하에는 중국과 이슬람 문명의 교류 근거로 송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와 이드리시 세계지도의 유사성을 언급. 그리고 인도반도의 위치 비정)
윗 지도에 지명을 추가함. 왼쪽의 숫자는 외쿠메네의 기후대, X표시는 비거주지역
1기후대의 가장 서쪽 섬들 중에 '신라 섬' 이 있을 것으로 생각됨..
신라 섬 이야기는 원지도 출처인 http://www.junpasa.com/_yunil/kkansu/27.htm 로..

4.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승과 거부; 거대한 지중해와 허술한 유럽

일반적으로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를 계승한 이슬람 세계도로 여겨진다. 이 지적은 한편으로는 옳지만 두 지도 사이의 차이도 커서 계승이라는 말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에서 이드리시 세게지도가 계승한 것은 이미 말한 것처럼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도, 본초자오선, 알려져 있는 거주 가능한 지역의 범위 설정이라는 세계도 제작의 기본 구조에 관한 것뿐이다. (...) 다시 말해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를 묘사할 때는 이드리시 세계지도가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를 계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거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국제성으로 가득찬 시칠리아 왕국에서 수집한 정보, 인도양 해역 세계를 경유하는 동방 교역을 통해 얻은 지리 정보, 그리고 중국에서 제작된 세계도의 수용이라는 독자적인 활동을 기초로 작도한 것이다.(...)


*중세를 벗어난 이드리시 세계지도; 근대의 선취

이드리시 세계지도가 그리는 세계의 범위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서쪽 끝에서 아시아 동쪽 끝의 중국 동쪽 연안까지 이른다. 호류지 소장 오천축도와 헤리퍼드 세계지도에서는 서쪽 한계와 동쪽 한계의 묘출 범위가 각각 인도 서부였다. 또한 고금화이구역총요도의 묘출 범위는 서아시아까지였다. 검토 대상으로 삼은 중세 세계도 중에서 12세기 중기라는 이른 시기에 제작된 이드리시 세계지도가 가장 넓은 범위를 묘사한 것이다.
또한 호류지 소장 오천축도와 헤리퍼드 세계지도는 각각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기본 구도로 한다. 그리고 고금화이구역총요도는 중국의 왕권 사상을 바탕으로 했다. 이에 반해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특정한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은 세계도였다. 그러한 차이가 이슬람 세계를 넘어 스스로 수집한 지리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의 거의 전역을 구도화하고 작도하려는 실증적인 태도를 낳았을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무슬림 상인의 활발한 해상 교역 활동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드리시 세계지도는 근대를 선취한 중세 세계도라고 할 수 있다.






느낀점
동시대 다른 문화권보다 훨씬 우월한 이슬람 지리학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사에서는 이슬람 문화권을 '유럽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니, 그저 '기타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이드리시 세계지도 이야기가 주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중세의 여러 세계지도를 비교한 뒤, 근대의 시작기에 포르투갈에서 제작한 '칸티노 세계지도'가 가장 걸작인 세계지도라고 말한다. 이건 시간나면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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