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6.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답사기 (2012.1.26)


(약 반년 전 타사이트에 올린 글 수정 및 보완해서 올림.)

전라도 일대 답사 마지막으로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을 들렸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 곳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가 보았다. 
우선 입장료가 2000원인 것에 놀랐다. 동행한 사람들 말로는 1년전만 해도 입장료가 없었는데, 그 사이에 생겼다고 한다. 더불어 관람로, 내부시설, 전망대 등이 1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정비되고, 낮엔 생태관이었다가 밤엔 천문대가 되는 웃긴 시설도 있었다.
게다가 더 놀란 사실은, 평일에 갔었던 데다가 입장료를 2000원이나 받는 곳인데도 관람객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관람객들은 방학 기간을 통해 '내일로' 기차여행을 다니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내일로 여행이 정말로 7일간의 자유로운 동선의 여행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낭만주의이다. 기차시간 제약이나 연계교통 부족, 그리고 정보의 제한으로 대부분의 이들은 결국 남들 가는 곳으로만 몰리게 된다.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내일로 여행' 그 자체가 필수적인 문화자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차역과의 우수한 접근성(뒤에 자세히 설명),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순천만의 여행지로서의 위상 등의 이유로, 순천시 입장에서는 '효자 관광지'인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입장료를 1년 사이에 2000원으로 올리는 베짱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많은 관람객들은 순천만의 '자연생태'를 즐기기 위해 2000원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그 외 자잘한 첫인상으로는, "세계 5대 갯벌 순천만"이라는 허위과장 문구가 거슬렸다. 순천만 지역만이 유일한 세계 5대 갯벌에 속한다는 오해를 의도한 광고 문구일 것이다. 우리나라 서남해안 일대의 갯벌 전체가 세계5대 갯벌지역에 속하고, 순천만은 면적이나 생태적 가치에서는 극히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게다가 2013년에 이곳에서 개최하는 정원박람회에 대한 홍보가 엄청났다. "내년의 이곳 입장료는 얼마가 될까?"  "순천시가 돈 독이 올랐구나!" 등의 생각을 하면서 정문을 통과했다. (물론 이 시대의 지자체에게 "돈 독이 올랐다"는 자체만으로 무턱대고 깔 수는 없는 현실이다.)

첫 사진을 포함해서 순천만의 경관 사진은 본인과 동행한 이가 찍은 것임을 밝힘;;
갈대밭 사이로 만들어진 데크를 따라 걷다가 전망대를 올라서 S라인 갯골과 낙조를 감상하고 복귀하는 전형적인 코스를 따랐다. 사실 이 관람코스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즉,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을 가는 이들은 모두 같은 관람코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사람이 많아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예전부터 순천만 전망대 오르는 산길이 엄청 힘들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다. 사실 가 보기 전에는 이 이야기가 이해가 안갔던게, "순천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데 왜 산길이 험하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직접 가 보니 이해가 갔다. 정답은 '순천만 생태공원 입구와 전망대와의 거리는 엄청나게 멀다' 였다.

'네이버 지도'에서 캡쳐 후 지명 레이블 및 탐방로 추가함

'생태공원 입구'는 순천시 대대동에 위치한다. 그리고 '용산전망대'의 위치는 순천시 해룡면 선학리의 '용산' 정상에 있다. 이사천 하구역은 두 지역의 행정경계선이다. 용산의 해발고도는 100m도 되지 않지만,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천만 갈대밭을 거쳐서 용산의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종단해야 도달할 수 있다. 제법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용산 바로 아래 선학리에 입구가 있었다면 어떨까?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선학리 입구에서는 산을 약간만 올라도 전망대에 쉽게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망대 관람 후 자유롭게 갈대밭을 거니는 관람을 추가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순천만이 유명해지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상상력까지 다다른다. 왜냐하면 선학리쪽에서 순천시내로 가는 접근성은 대대동에 비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순천만생태공원의 입지적 장점이 드러난다. 순천시내에서 버스로 대대동 입구까지 금방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입지적 장점은 선학리에 입구를 만들지 않은 원인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순천만 생태공원의 폐쇄적인 관람로를 통해, 이곳에 대한 일관적인 장소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갈대밭 자체는 사실 하구역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식생이다.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금강 하구의 '신성리 갈대밭', 안산의 '시화호 갈대밭', 시흥의 '갯골생태공원' 등이 유명한 편이다. 그런데 순천만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경관이 있다. 바로 'S라인 갯골', 그리고 '미스테리 서클'이다.
S라인 갯골은 갯골과 전망대 위치가 절묘하게 맞은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고 눈길을 끄는 경관이었다.
그런데 '미스테리 서클', 즉 동그란 모양의 갈대군락은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함을 가져왔다. 어떻게 동그란 모양의 갈대 군락이 생겨날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치부하기엔 형성과정이 너무 궁금했다. 팜플렛, 동행한 사람들 등에서 정보를 구해 보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해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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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부러지는 대답을 순천시 관광기획과 김인철씨에게 들었다.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고요, 순전히 자연적으로 자란 겁니다. 갈대는 본래 방사형으로 퍼지며 자랍니다. 하나의 점에서 큰 원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갈대는 대개 뚝방 근처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원형으로 퍼지지 못하고 터진 방향으로 자라지요. 하지만 순천만 갈대밭은 강물을 타고 흘러 내려온 갈대 씨앗이 갯벌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제약이나 방해 없이 자라난 겁니다. 그리고 이 갈대 동그라미가 합쳐지고 또 합쳐지면서 오늘날 거대한 갈대 군락이 조성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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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갯벌에 갈대씨앗이 처음 정착하고 식생이 발달하는 초기에 이러한 '미스터리 서클'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럼 이 말은 '넓은 갯벌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같은 글 아래 문단에서 순천만 갯벌의 탄생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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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갈대밭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관광 명소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순천만에 자리잡은 갈대밭은 총면적이 약 30만 평. 국내 최대 규모 갈대 군락지다. 지금은 순천만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꼽히지만, 이런 거대규모가 된 건 불과 30년 전이다. 1960년대 순천 등 전남 지역에 큰 홍수가 있었다. 피해가 컸다.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이사천에 댐이 만들어졌다.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강물의 속도가 느려졌다. 순천만에 퇴적물이 쌓이고 떠내려온 갈대가 정착하면서 거대한 갈대군락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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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천에 만들어진 댐은 주암댐의 수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조절지댐'이다. 보성강의 주암댐은 저수량이 훨씬 큰 댐이고, 이사천의 댐은 유역분지와 유량이 훨씬 작다. 주암댐과 이사천은 유역변경식으로 이어져, 주암댐의 물을 이사천에 저수한다. 1991년에 두 댐이 완공되어, 이 물은 전남 동부권의 상수원으로 이용된다. 주암댐과 이사천 수자원 이야기는 이 링크의 아래쪽에 자세하게 나온다. 

그리고 이사천에 댐이 생기면서, 댐의 하류에는 평수시 유량과 유속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하구역에서의 하천작용을 약화시켰고, 상대적으로 조류의 힘이 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순천만 하구역에는 댐 건설 이후 갯벌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러한 갯벌에 갈대가 새롭게 정착하는 과정에서, '미스터리 서클'이 형성된 것이다.

관련논문은 아래와 같다.

인위적 환경변화에 따른 해안지역 퇴적환경의 변화 - 박의준, 2001, 대한지리학회지 제 36권 제 2호
http://kgeography.or.kr/publishing/journal/36/02/02.pdf


 
esri 사이트에서 찾아본 1990-2005년 순천만 위성영상의 비교이다. 1990년 영상에 비해 2005년의 영상에는 갯벌의 넓이가 넓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영상에서 초록색으로 표시되는 곳은 갈대밭이 증가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래 링크로 볼 수 있다.
http://changematters.esri.com/compare?level=13&center=-25881468.24018088,4145177.39996048&im=Infrared&sy=1990&ey=2005


마지막으로 느낀점을 써 보면, 순천만은 분명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생태적으로 대단한 곳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근대화과정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규모의 간척사업이 진행되었고, 우리가 아는 대규모 간척사업 이외에도, 서남해안 여러 지역에서 소규모로 간척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사실상 서남해안에 면한 넓고 정리된 경지는 거진 다 간쳑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간척사업으로 인해, 순천만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갈대밭 및 하구역 생태가 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순천만은 "운이 좋게" 살아남은 곳이다. 대단하고 아름다워서 보존해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순천만의 명물인 갈대밭도 결국은 이사조절지댐이 만들어진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자연생태'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적 요인과 결합하여 형성된 경관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이사천의 댐이 건설되지 않았다면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은 순천에 '탄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순천만을 홍보하는 문구에서, 마치 순천만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연생태가 살아있는 곳이라는 투로 이야기하면 듣기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답사와 이후의 인터넷 검색에서 여러 새로운 사실을 알았고, 기존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이 글이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이 절대적으로 나쁜 곳이라는 의도로 쓴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의 탄생과 그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소소한 바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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