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부터 다윈의 견해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다가 진화론의 승리로 끝나지요. 그와 더불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제 신은 인간의 땅을 떠나라!”라는 생각이 팽배해집니다. 신학적인 세계관이 의미 있는 학문연구의 토대라는 생각이 반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과 학문은 전혀 별개이며 신앙을 전제로 한 학문연구는 더 이상 의미 있는 학문연구가 아니며 사이비 과학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 비판의 과정 속에서 낭만주의와 신학적인 세계관이 비판받았는데,(...) 그런 분위기를 앞장서서 주도한 인물이 바로 페쉘(Oscar Peschel, 1826~1875)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훔볼트와 리터의 학문은 더 이상 학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훔볼트와 리터의 격하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페쉘의 입장은 지리학은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형학만이 지리학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게 됩니다. 지역지리나 인문지리에서는 더 이상 객관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지리학에서 다 잘라버리자는 겁니다. 그가 볼 때 지형학만이 학문으로서 의미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해안선 굴곡의 형태적 특징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피오르드 해안 개념을 제시하였지요. 그 밖에 지리교과서를 만들고 지리교수법에 관한 책들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수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페쉘은 훔볼트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함하는 그런 자연지리는 제거되어야 하고, 순수하게 객관적인 연구, 즉 물리, 화학적인 접근을 하는 지형학만이 지리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식생지리학 등의 분야를 포함한 훔볼트의 자연지리학 연구를 natural geography 라고 하였는데 이제 그런 말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atural이라 할 때는 물리, 화학과 함께 동식물(생물)이 들어가는 반면, physical 이라고 할 때에는 물리, 화학만 포함하는 겁니다. 그래서 페쉘 이래로 natural geography가 아니고 physical geography라고 분야의 명칭이 굳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페쉘이 생각했던 것을 학문적인 체계로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리히트호펜입니다.(후략)
<지리사상사 강의노트>, 권정화 저, 2005, p.132~134
지리전공자가 아닌 번역자가 지리책을 옮기는 경우, 흔히 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physical geography를 '물리적 지리학'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내가 아는 책만 해도 2권이니깐, 다른 책에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지리학의 인식이 많이 낮다는 점에 안타까워하곤 했었다. 그런데 위의 글을 접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어원을 따져보면 물리적 지리학이 맞았던 시절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훔볼트는 자연의 '조화'를 주목하고 찬양했다. 그리고 그러한 조화가 나타나는 원리를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정암 역, 2012 를 보면 이러한 훔볼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리터는 지역의 조화가 '신의 섭리'라고 믿었다) 자연의 여러 요소가 어우러지고 조화하는 모습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종교적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어쩌면 훔볼트에게는 자연 자체가 종교적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낭만주의적 자연관'을 비판하고 지리학을 지형학 중심으로 재편한 이가 바로 현재의 physical geography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페쉘이라고 한다.
한편 현재의 자연지리학은 지형학, 기후학 등 '물리적 지리학'은 물론, '생물'지리학, '인간'에 의한 환경변화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환경과학을 지향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페쉘이 더 오래 살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지리학을 배우고 있었을지도 궁금하다. 한편 한국의 자연지리학계에는 페쉘은 없었지만, 지형학자가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기후학, 생물지리 등의 전공자는 극히 드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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